2023. 5. 3. 08:00ㆍ라스베가스의 먹거리/나의 이야기
라스베이거스에는 2개의 주간신문이 있으며
Korean LasVegas Times 에
운석이 정규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배상환 문화원장께서 매월 한 사람씩 추전해 인터뷰를
하고 신문에 그 내용을 계제하는데 부족한 운석을
초대해서 인터뷰를 하게 됬습니다.
모든 블러그 친구들에게 인터뷰 내용을 올리고
감사드리며 인사드립니다.
거침없는 삶! 행복한 삶!으로
라스베가스 타임즈 5월5일 지에 소개되었습니다.
-5월! 꽃의 계절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니듯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또한
저 마다의 가치와 꿈을 가지고 삽니다.
오늘은 본지 라스베이거스 타임스에<라스베가스에서는..>
이라는 코너를 통해 라스베이거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전용복 선생을 모시고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독자에게 인사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즐겁고 행복한 5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저 산 너머의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행복을 찾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선생께서 매회 쓰시는 <라스베가스에서는.> 는 소재가
다양하고 글에 거침이 없어 글을 읽는 독자들이 필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인 소개를 좀 해주십시오.
“저는 서울 신촌에서 태어나 중동고등학교, 외국어대학을
중퇴했고 1968년 당시 좋은 직장으로 손꼽던 은행
(상업은행)에 입사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습니다.
은행 재직 당시인 1970년 장충체육관에서 상업은행과
제일은행의 농구 시합이 있었는데 그때 제가 떠밀리려
앞에 나가 응원을 리더 했는데 그것을 계기로 제가 사내
응원단장이 되었고 나중에 알려지자 새로 창단한
상업은행 축구팀의 매니저 ( 주무 ) 일까지 맡아했습니다.”
금융단 축구대회에서 상업은행이 우승을 차지했다
좌측에서 2번째가 운석 ,대표감독을 맡았던
김호선수는 11번째
-활달한 성품은 타고나신 것 같습니다. 응원단장, 축구팀
매니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이전에 그런 활동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제가 양정중학교 연극반 활동과 응원단장을 했었고, 축구
선수로도 약간 뛰었기에 어느 정도는 가능했습니다.
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은행 일은 얼마동안 하셨는지요? 그 후 바로 미국으로
오신 것인가요?
“상업은행에서는 지점과 본점 영업부에서 합해서 7 년간
근무했습니다.
은행을 퇴임한 후 당시 해외 건설 붐이 한창일 때라 동산토건
(두산건설 )총무 인사과에 입사하여 아랍어를 구사하는 장점
덕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3년간 As-Salam International Hospital 건설 공사의 현지인
한국인 노무관리 총책임자로 근무하고 퇴사하여
1985년 미국 Salt Lake . Utah로 이민했습니다.”
-은행 영업부 행원이 응원단장이 되고, 축구팀 매니저가
되고, 급기야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서 일을 하다가 이번엔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민
하셨습니다. 정말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어떤 계기로 미국에 오셨습니까?
“Weber State 대학의 체육과 교수와 주유소를 운영하던
동서의 초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몰몬의
본고장인 솔트 레이크에 입성해 미국 Grocery에 동양
마켓을 함게 오픈하여 17년간 영업하며 발이 묶였습니다.
저도 Weber state university에서 전에 못 다해 필요한
공부를 했습니다. Ogden 에 살았으며 Layton City 는
미국의 3대 공군 비행장 중의 하나가 있는 곳으로 마켓은
한인과 몰몬 선교사들이 많이 이용했지만 저희는 몰몬
교회가 아닌 한인 교회에 출석하다 보니 종교적으로
배타적인 주민들로부터 발생하는 약간의 사업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온가족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큰 사업은 아니였지만 눈을 돌려 여행, 등산,
사냥, 골프 등 추미와 자연적 경관을 즐기며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민감한 나이에 있는 자녀들을 교육하기에는 참 좋은
환경을 가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의 였습니다.”
유타의 자랑스러운 아취스 국립공원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로 오시게 된 겁니까?
“둘째 딸이 Delta 항공사에 입사하게 되어 가족이 모두
라스베가스로 왔습니다. 저는 처음 Primm Valley 에서
1년간 호텔 경력을 쌓은 후 , 현재의 시저스
엔터테인먼트로 옮겨 17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타고난 활동력을 결코 멈추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웃음) 그저 열심히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상을 세 번 받았고, 부서별 한 명씩 선정하는 상도 받았고
호텔 내 우수한 근무 성적과 다음 블로그(Daum Blog)
활동을 인정받아 Caesars Award of Excellence 시상식에서
‘시저스 엔터테인먼트" 라스베가스 홍보대사’로
부사장이 저를 만찬연회와 시상식에서 소개했습니다.
또 한글로 작성되는 블로그 운영과 지역 주간신문에 생활,
여행등에 관한 칼럼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블로그 활동은 언제부터 했으며 글의 소재와 그동안 쓰신
글의 분량은 얼마나 됩니까?
“다음 블로그(Daum Blog)를 개설하여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것은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한 후부터입니다.
유타에 있을 때는 한인회보에 여행안내를 연재했습니다..
다음 블로그에는 2013년 12월부터 2022년 8월까지 10년
간 썼으며 이 사이트가 지금은 ‘TISTORY’로 바뀌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지역 신문은 ‘한인신문’, ‘베가스 한미뉴스
등에 썼으며 지금은
‘‘라스베이거스 타임스’연재하고 있습니다.”
글의 소재는 다양합니다. 베가스 문화 예술 공연 안내,
카지노 & 호텔 소개, 미국 국립공원 안내, 세계의 여행지
소개, 레스토랑, 사냥, 등산, 낚시 등 취미 생활 안내 니다.
그동안 써온 블로그 글은 450여 편이 넘으며
구글(Google Map)에 올린 제 글 가운데는 방문자가
3백만 인 제 글도 있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신문에 쓴 칼럼이 500여 편
인데 신문글이라는 것이 대부분 마감 시간에 쫓겨 쓰기에
그 어떤 글쓰기보다 스트레스가 많고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조절하시는지요?
“신문 마감 시간에 맞춰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직장 생활까지 하면서
글을 쓰려니 더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적극 만류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제 글을 읽고
수정하고 때로는 필요한 사진까지 찍어주고 있어 한결
도움을 주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행에 관해 남다른 경험이 많으실 것 같은데
소개 좀 해주십시오.
“1980년 초 이집트에서 근무할 때 틈틈이 아랍 말을 타고
피라미드 뒤쪽 사막을 질주하는 취미에 미쳐 3년을
보냈습니다. 몇 번 낙마도 했지만 다행히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사막을 쉬지 않고 달리는
최고의 여행입니다
그 당시 승마 기술을 습득한 덕분에 유타에서는 엘크,
사슴 사냥에 미쳐 고산에서 말을 타고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엘크 사냥은 어느 정도 전문가의 수준에
올랐다고 자평합니다. 남들이 평생 한 마리도 못 잡는
가대한 엘크( ELK)를 저는 지금까지 무려 13마리나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모든 열정과 긴 고생끝에 정조준한 한방의 굉음과
함께 사냥에 성공하는 그 순간은 남자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선생께서 쓰신 글을 보면 매우 가정적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족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가정이 천국이다.’라는 말을 100% 공감합니다.
제게도 가정이 가장 소중합니다. 금년이 저와 아내
(김정실)의 결혼 50주년 금혼식이 되는 해인데 우리는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은밀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딸은 병원 부원장을 거쳐 현재는 Health tech 관련
회사의 Senior Consultant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딸은 Delta 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중고등
학교에 다니는 손주가 합쳐서 셋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주십시오.
“건강이 허락하면 현 직장에서 일 년 정도 더 일한 후
은퇴하여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다양한 독자층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문화 예술분야에
좀더 여유 있게 시간을 가지고 즐기고 싶습니다.
배 원장님께서 하시는 ‘100인 합창연주회’ 등의
음악회, 강좌도 찾아가고요.
물론 여행도 게속 다닐 생각입니다.”
_끝으로 우리 독자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한 말씀 주십시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기쁘게 감당하며 삽시다.
“눕자!”, “자자!”, “더 눕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정말 망칩니다.
인간은 움직여야 합니다. 일은 곧 나의 활력소이며
바로 내 건강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손을 놓아 본 것이
Covid -19로 1개월, 이민 준비로 두산건설에 사직서를
내고 쉬었던 2개월이 제 인생에 쉬며 보낸 기간입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성실하고 언제나 남을
배려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행복해질 것입니다.
-긴 시간 동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더 활발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전 용 복 ( 운 석 )
http://yongbokj2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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