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오나시스 섬 쿠르저 ( 2 ) /라스베가스 에서는

2021. 6. 5. 13:06여행 안내

전편에 소개하였던 그리스의 아크로 폴리스 언덕에

대하여 전 세계 수십 명의 고고학자, 대학교수, 또 많은

사람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인 아테네의

Acropolis를 위한 개조공사에 항의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하고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가치 "고물 보존, 보호에

관한 국제적 인정에 확립된 원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심각한 기술및 운영 문제에 이의와 염려를 제기하였다.

GREEK 엔지니어들은 최근 절벽 위의 ACROPOLIS 현장에 

Crumble을 발견하고 이에대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에 따르면 금년 1월 암반들이 무너져 내리고 도시 쪽으로

바위들이 굴러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부위가 광범위하게

넓어져 고대 사원 이 위치한 남쪽의 언덕은 많은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빌린 돈을

제대로 깊지 못하면서 국가가 " 디 폴트" 사태에

빠지면서 아주 심각해졌다.

 

유로존에서 축출될 위기에 봉착하였으나 2010년 

IMF 구제금융을 을 받고 재정긴축 정책을 감내해 오고

2017년부터 어느 정도의 회복세를 보이고 2019년 GDP

성장 2.2 % 또 구제금융에서 졸업하여 희망이 보인다.

 

 

그리스는 이 문화유산들로 관광산업에 크게 의지하는

나라로서 전 세계 최대의 관광지인 이곳의 명성을

계속 유지하고 안전 대책을 세우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2019년부터 그리스를 다시 찾은 관광객은 3,200만 명 

그리스 인구 1,100만 명의 3 배에 달하는 숫자다

관련된 JOB 은 거의 1 백만 명에 육박하니 그리스

전체 일자리의 1/4이다

역시 그리스는 관광산업이 살아야 경제도 회복됨을

보여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동절기 눈은 폭설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겨울철 관광객도

몰려온다고 한다..

해운 왕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 섬 

오나시스는 누구인가?

 

오스만 제국의 항구 스미르나 ( 터키의 이즈미르)

에서 담배상인 아버지의 둘째로 태어나 1차 대전의

동맹국 오스만이 패하고 난민 신세가 된 오나시스

가족은 1922년 그리스로 돌아와 중고선박에서 일하였다.

 

1923년 $ 250을 가지고 17살에 아르헨티나로 이민한다.

각가지 막일을 하며 담배사업 2 년 만에 $10 만을 벌고 

담배 공장을 설립 25살이 되자 $100만을 벌었으며

오나시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재 총영사로

임명되었다. 

1930년대 세계 경제가 대 공항에 빠지면서 중고 화물선을 

구입 2차 세계 대전 후 선박수를 늘리고 1950년대 사우디와

석유 수송 독점계약 조선, 광산, 부동산으로 국영 항공사까지

인수하고 엄청난 부를 쌓아나가 선박 해운계의 왕으로 불린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신화적 존재로 전설적 인물로

평가받으며 결혼도 2 번하고 여러 여성과 염문도 많이

뿌려 바람둥이로 여성 편력이 늘 화제를 뿌린 인물이다.

 

스코르피오스 섬을 선물하고 23살이나 어린 재클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큰돈을 썼으며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권력을 위해, 이에 맞추어 엄청난 재산을  바탕으로

자신괴 아이들을 지켜주겠다는 안전성으로  오나시스와의

재혼이 마침내 이루어졌지만 , 결국 5 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

1968년 10월 17일 그리스 서편 이오니아 해에 위치한

스코르 피오스 섬에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해운 왕과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식이 열렸다.

 

1963년 11월 암살당한 미국 35 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미망인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그녀가 선박 왕과

결혼을 하다니?

 

미국인이나 양식 있는 사람들은 이 결혼식에 찬사보다는 

실망과 크나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 둘의

결혼식은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 화려함도 결국 7년을 넘기지 못했다.

 

재클린 오나시스도 뉴욕으로 돌아와 4 년의

암투병으로 64세를 일기로 1994년 5.19 조용히

떠났으며  " 나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라고

했다니 무엇을 위한 결혼이었을까?  

그리스에 왔으니 아크로폴리스 다음은 역시 유람선을

타고 그 유명한 오나시스 섬을 관광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정해진 코스가 아닐 수 없었다. 

털털하게 테니스 모자를 옆으로 꾸욱 눌러쓴 운석과

현 캐나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인 임재광 선생 

(Architect)과  어쩌자고 둘이서 이렇게 붙어 다니나? 

김 부장, 운석, 정 부장의 망한 중이다.

 

요즈음 카니발 쿠르져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당시로서는

가장 인기가 좋은 유람선으로 그 명성을 날렸다.

 

이집트 카이로의 가장 현대식 설비와 의료의 최고 병원을

계획하여 설계된 병원을 기술이 우수한 한국의 동산토건

( 현 두산건설)은  AS-SALAM INTERNATIONL HOSPITAL

신축 공사를 드디어 수주하여 근 3년 반에 걸쳐 시공하였다.

 

낮과 밤도 없이 공기를 맞추기 위한 직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은 연일 이어지고 수많은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각 파트의 책임자들은

정말로 모래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고생이 많았다.

카이로에서 날아와 잠시 휴가를 즐기며 유람선에 동승한

운석과 설비 총책 정 부장, 전기 총책인  김 부장께서 

모처럼 망중한의 이국적 풍치에 잠겨본다.

 

종합병원의 의료시설을 위한 전기 설비 공사는 일반

건물의 건축과 달리 고도의 전문성이 더욱 필요하여

가장 우수한 직원들을 선별 파견한 공사였다.

 

카이로의 다른  현장에서 운석과 같은 현장 노무

관리 책임자로 서로 같은 업무이며 현지인과 한국인

기능공을 관리하느라 정보도 교환하고 더욱

친근해진  손 과장이며 두 사람다 참 어려보인다.!

사진처럼 당시에는  동양인 특히 다른 한국인이라고는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다.

그 흔한 맥주도 안 마시고 참 건전한 여행이며 , 모두

휴일에는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쟈깅 수영 테니스 승마로

신체를 관리하며 함께 유럽여행도 다녔다.

사연이 많은 오나시스 섬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운석이

인파로 복잡한 유람선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오나시스의 돈으로 경제적 지원과  가족의 안전을 지켜 줄

신변보호 받기 위한 수단을 기대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재 결혼 했다는데 글쎄 오나시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재클린에게 유산을 상속할 수 없도록 하라는 유서를

남겼으며 , 이에 그대로 있을 재클린인가! 길고 긴 법정

싸움 끝에 $ 2,600 만불의 유산을 겨우 상속받았다.

 

오나시스는 아들이 1973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고

1957년  그리스 국영항공사 인수한 지분을 정부에 다

넘기고  71살 1975년 폐렴 합병증으로 프랑스 파리

부근에서 세상을 떠났다. 

Jacqueline Kennedy 1929-1994는 친숙하게 느껴지며

Jacqueline Kennedy Onassis라는 이름은 약간 거북하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인

존 F 케네디가 가장 사랑한 여인은 우아하고 덕망도 높고

사교성과 지성미 뛰어난 패션의 감각은  "재키 스타일"로

전 세계  여인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며 명품 쇼핑중독으로

재정적 어려움까지 거론될 정도였지만

미국 여성상과 국가 이미지를 바꾼 인물로 평가된다.

오나시스와의 재혼은 재키를 결국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으며 1975년 오나시스가 사망하면서 다시 미망인이

되었으며 세계에서 최고로 화려한 영부인이었으며,

어느 누구보다 비극적이며 말할 수 없는 불행을 안고

기구한 운명을 견디며 노년을 자선사업과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1994년 림프종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오나시스 섬은 러시아 갑부 딸인 AS 모나코 축구클럽

소유주인 러시아 갑부 딸이 오나시스 후손으로부터

스코르피오스 섬을 사들였으며 약 1 억 유로

(1 천 460억)이라고 밝혔다

 

명예와 부귀를 가지고 내가 못 가진 세상 권력을 등에

업고 살면서 성공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더욱더 자신을 빛내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었지만

상반된 이해타산으로  한 여인의 진정한 사랑을 영원히

내 가슴에 담을 수는 없는 것이다.   

 

30대와 60대의 결혼은 미국인들에게 실망과

분노까지 안겨주었으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두 사람은 맞지 않았으며 결혼생활이 평탄하지

못하고 서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엄청남 부와 권력 명예보다도 현재의 내 가정이

내 아내와 남편과 자녀가 ,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다시 깨닫고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http//blog.daum.net//yongbokj23

 

yongbok      jun      ( 운           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