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아마츄어 선수권 동 메달의 김정철선수 와 챔피언 박찬희 의 근황 / 라스베가스 에서는

2019. 10. 8. 04:17스포츠와 문화예술

누구에게나 스포츠를 사랑하고 열광하며

함께 즐기는 것은 우리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며

어떤 종류 무슨 운동을 좋아하던 관계없다.

육상,축구, 테니스, 골프,야구, 농구 .레스링....


국제 대회에서는 열광하는 애국심 발휘나,

본인의 스트레스 해소와 관련 또는 내 운동을

정기적인 취미로 하면서 자신의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며 ,에너지 발산

으로 심장 혈액 순환도 자동으로 잘 되고

희열함으로서 마음이 더욱 더 즐거워진다.


경기를 보면서 만족은 물론이며 운동시합에는

항상 감동적이고 환호와 인간의 승리 또 한편

좌절의 스토리 그리고 슬프고 분통과 아픈

마음도 존재하는 가운데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본능에는 원시적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안전위주와 곧은 길로만 살아야하는

우리 인생에 반발심리는 스포츠로 하여금

거칠고 스릴있고 사전에 장담 하고 알수 없는

경기를 지켜보는  그 순간 순간의 기대심리는

말 할수 없는 희열을 직맛보고  찿게 된다.


자! 내가 운동선수의 꿈처럼 가슴에 태극기는

못 달고 살았지만 ,항상 건강을 위한 운동은

평생 멈추지 마시고 열심히 해보세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목적과 크나 큰 희망을 가지고 있다

즉 "국가 대표선수" 가 되는 것이다.


수 많은 장벽이 가로 막고 있고 자기가 하는

운동의 국가 대표 선수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며, 험난하며 더구나 전세계 챔피언 팀이나

개인적 챔피언은 어느 종목이던 피를 말리고

끝없는 피와 땀과 인내의  결실이 요구된다.


아무도 더 이상 세울수 없는 김정철의

아마츄어 권투의 기록

    

   " 130 전 125 승 107 KO 5 패"


전후무후한 이  KO 율은 당시 다른 선수들에게

같은 체급에서 만나는 것을 기피하고 두려운 존재로,

강력하고 예리한 펀치와 스피드로 KO가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스포츠 메스콤에 앞 다투어 대서

특필로 "공포의 왼손잡이 김정철 "의 이름을 올렸다.


많은 시합을 거치면서 태국기를 가슴에 달고

예선과 결승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유고슬라비아의

아마츄어 세계 챔피언전에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 .



 1984~1988 에는 허영모,문성길,김정철, 김동길...

의 대단히 강력한 체급우승 후보들이 국민들을

열광케 하였으며, 당시 쿠바 세계 선수권에서는

12 체급 중 쿠바가 6 체급을 휩쓸때였으나,


문성길은 전남 영암 빈농의 아들인 그는

중학교에서 4 km 달리기에 1 등을 하는 재능을

보였고 "세계 선수권 "금메달을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목에 걸었고 88 WBA 밴텀 90 년

WBA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1978 WORLD Amateur Boxing Championship!


Belgrade, Yogoslavia   세계 아마츄어

챔피언 쉽의 시상 대에 드디어 올라선

밴텀급의 김정철 대표선수 ,참 장하고 장 하다!!!


경기도 파주시 체육회에서는 특별히  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여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은 못 탔지만  6 명의 대표선수 중

김정철선수는 유일한 동 메달을 획득하였고

귀국한 김정철 선수를 위하여 카 퍼레이드를

벌였다. 


김정철 선수는 1차전에서 소련선수를 누르고

2 차 전에서 일본 선수를 연파하고 동메달을 놓고

강자인 케냐의 "모데스 나프니" 와 격돌하였으나 ,

왼 손 엄지 손가락 부상이 너무 심하여

글러브를 낄 수 없을 정도였고, 상대방 수가

머리로 눈을 버팅하여 도저히 앞을 볼수도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투혼을 보이며 싸워 한국선수로는

고귀한 "동 메달"을 확보하고 준 결승에 올랐다.


내몸을 던져 죽어도 싸우겠다!


그러나

유고 선수와 대전을 앞두고 가진 신체검사에서

자국의 ? 이익을 위해 부상으로 경기를 더

진행 할 수 없다는 주최측의 판정을 내려

금 메달을 목전에 두고 분루의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링에서 결승전에 올라 끝까지 싸워보지

 못한 채 동 메달을 목에 걸었다.


2 회 세계 선수권 대회의 공산국가 유고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높이 떨친 쾌거였다

동국대학 법정대학 "경찰 행정학교"를 졸업한

 김정철 선수에게 동국대학교에서 기증한 표창장

근대 격투기의 시작으로 불리우는 복싱은

생각보다 거리감각,체급,근력, 지구력, 풋워크,

가드 ,근 지구력, 맷집, 공포심 없는 용기,

이런 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얶혀 복싱 기술이

 없이는 어떤 격투기도 이길 수 없을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  주먹의 강자가

되어야만 한다


운 석 ( 당시 상업은행 축구팀 매니져)  고 김정진

바로 김정철 바로 위의 형( 중앙고, 중앙대

군 축구 창단 멤버) 이 셋은 운석의 집에서

함께 먹고 자며 새벽마다 장 거리를 뛰는

기초 체력과 운동을 해 왔고 ,선수촌에 입주하면

열심히 딸아 다니는 재미로 살았다.


시합 때마다 문화체육관에 쫓아 다니며

시합준비와  링 사이드에서 수발을 들었고 ,

가끔 중요한 시합에는 상업은행 축구단

선수들도 모두  함께  참석 응원을 해주었다.







제 21 회 Olympic Games은 1976년

7.17-8/1 캐나다 몬츄리얼에서 그 성대하게

세계 94 개국 6,084명의 선수들이 참가하고

성화가 타 올랐다

                      .

한국 대표선수들이 입장하고 있다

올림픽 선수단에게 수여한 메달이다.


1976년도 몬트리얼 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LF 박찬희와 F 급의 김정철이

김치복  유옥균을 상대하여 우승하고

둘다 함께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이때 이한성 대표팀 코취는 신한 체육관에서

박찬희,김정철,박인규,임병진 등 스타급

복서를 지도 육성하면서 그 이름을 날렸다.


"이한성 대표 팀 코취를 이 운석도 여러번

김정철과 함께 만나기도 했지만 , 아마

복싱의 살아 있는 전설 조철재 회장은

선수단을 총괄하는 대표로 참관하였다,    



올림픽 출전 전의  아마츄어 복싱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함께 모였다.

절친했던 당시 박찬희,김정철, 황철순 ...


대한민국은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금메달

장은 경 선수가 유도에서 은 메달을 획득하여

종합 19 위를 해서 국민들의 자부심을

심어주고 환호케 하였다


세계 의 많은 격투기중에 권투만큼 규칙과

규정이 복잡한 격투기는 없다.


약간 뭐하면 무조건 반칙이고 "권투에서 반칙인

 기술"을 세어 따져 본다면 80 % 가 반칙이다.


권투 선수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체중 조절이며 물 한모금도 재고 따져

마셔야 할 때는 눈이 팽 팽 돌고 중량조절을

위해 굶주리고 또 못 먹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지 못하면 시합도

전에 출전도 못하고 끝짱이다.

사진:좌측으로부터   박찬희 세계 WBC 챔피언 ,

김종열  파주  법원리 체육회장, 김정철 세계

아마츄어선수권  동 메달  친구 3 인방 이 만났다.


대한민국을 빛낸 우리의 자랑스러운

박찬희 ( 동아 대) 선수는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벌어진 WBC 멕시코 미구엘 칸토을 15 회

심판 전원 일치로 승리하여 챔피언에 올랐으며,


당시 31세의 노장 칸토는 14회나 타이틀을 방어한

멕시코의 대 영웅이며 박찬희는 23세로

10전 9 승 1 무 ( 5 KO) 로 비교도 안되는 신인과

싸움이라고 했으나 , 칸토의 둔탁한 훅과 어퍼컷

박찬희는 적극적 공세로 스피트와 스트레이성

숏 훅의 대결 그리고 포인트 위주의 영리한 

경기 운영으로 전원 일치의 판정승을 거두었다.


그 이후  5 차 방어에 성공하고 국민들의

영웅으로 한국복싱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1982년 12월 은퇴하였으며통산 전적

 23 전 17 승 ( 6 ko ) 4 무 2패  의 대단한

챔피언으로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겼다.

1974년 고 2학년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했던

박찬희는 스피트와 테크닠으로 아마츄어에서

127전 125승 2 패로 대단한 경력을 가졌다


참 오랜 세월이 흘러 두 친구가 일산에서 만났다.!


김정철 , 박찬희는 신한 체육관의 동기생으로

이한성 코취 와 함게 먹고 운동하고 올림픽

체종 선발전에 함께 우승하면서, 대한민국의

올림픽 국가 대표가 되었다.

권투를 사랑하여 평생을 살아왔고 흘러간

세월 속에 이제 다시 만나 감회가 깊다!


찬희야!   정철 아 !  가슴이 뛰는구나 ....

아직 살아 있으니 우리는 다시 만났구나 !!


김정현 파주보육원 원장( 김정철의 둘째 형 은

한국체육관 보디빌딩 사범을 역임한 체육인),

    김종열 체육회 회장이  김정철 선수를

    파주 체육회 회장단과  임원들에게

오랫만에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여자 복싱 세계 타이틀전 유명유가 주최하는

시합에 함께 참석 경기를 관전하였다.

김정철 선수, 김종열 회장, 국회의원

파주 출마자 와 경기를 관전했다.

고국에서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김정철

선수는 캘리포니아 엘레이, 유타 주 Salt Lake에서

윗 형인  고 김정진과 사업을 하며  지내왔다.


김정식 맏형과 형수 ,김정철, 큰 누나 작은 누나,

운석 ( 전 용 복)이 유타 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는데 ,김정철 선수의 가족들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김종열회장은 "2014년 자랑스러운 대한국민

대상" 에 선정되어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정치, 경제,사회,문화예술,스포츠,.기업경영,

자치 행정등 시회 각계 각층에서 나라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고 해당분야에 발전을 선도하며

경쟁력을 높이는데 이바지한 숨은 일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김종열 회장은 총 17개 분야 시상식에서 " 의료

봉사 대상"을 수 상했다.

"2015년 대한민국 성공대상" 수상


2014" 대한민국 성공 대상" 에 이어

제 5 회  금융마케팅부문에서 명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1995년 명예 지점장으로 파주,고양, 김포,강화지역

경기 북부지회 회장으로서 금융고권과 중소기업간

재정 건전성,교류 활성화,지역 봉사활동, 나눔과

 실천활동과 골프 동우화 활동 등 체육활동을

통한 주민 한마음 체육대회를 개최 체육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공로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주민의 체육활동을 다양화 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의료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의

설립으로 지역주민 건강증진과 보건 사업 확충에

혼신을 다하고 소외계층 돕기에 " 사랑의 밥차"

후원회 이사로 나눔의 실천도 도모해왔다.


40 만명의 파주시가 경기도에서 살기 가장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 중,

 "법원 읍 체육공원"을 2009년 부터시작해

2015년 완공시킴으로서 가장 큰 보람으로

법원읍이 대한 민국의 명품도시로 비상하는데

"하나의 밀알이 되고싶다"며 겸손해 했다.


이웃돕기 골프대회에 240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고 동호인 저변확대와 침목도모, 기관단체

우호교류 수익금 으로 " 사랑의 쌀"전달, 주민

 건강증진과 어르신들의 체육행사 개최에 쓰인다.


우리은행 은행장의 위촉장


김종열 회장은 김정철이 미국에서 나올때마다

장기간 집에서  먹고 재우고 입히며 

국민학교 동창생으로 가장 친한 친구로서

최대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없고 단지 스포츠를

또 동창생 친구를 지극히 사랑하는 탓이다.


가장 사랑했던 김정진 형이

유타에서 테니스를 함께 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그 충격이 너무 심해 방황하자 ,

하던 사업을 다 접고 고국으로 돌아 오라고

계속 권유하였다.


김종열 회장은 고국에 다시 나와 함께 재기

할 것을 권하고 자신의 집에서 살게하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있는  체육인의 숨은 미덕으로

친구를 사랑하는 끊임없는 온정과 사랑을

 베풀고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다.


김 회장은 몇번이고 지난 날을 회상하며

함께 즐겁고 행복한 자리를 만들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렀지만 복싱 링에서 잔뼈가

굵은 신화적 인물들은 그 자리에 결코 멈출수 없다.

이제 후배들을 위하여 ......


박찬희 챔피언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달라는

외국의 요청에 내년 응할 것을 고려 중이다.


김정철 선수는  복싱 체육관에서 후배 양성으로

올림픽 대표의 꿈 나무들을 키워 내려는

구상을 김종열 회장과 구체적으로 추진 중이다.

박찬희 챔피언은  지난날 사각의 링에서

화려하기도 했지만 양보없는 투쟁과 승부의

세계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 온 열정을

다해 살아오며 남이 다 이해 못하는 피와 땀과

인내의 고통도 헤아릴수 없는 어려움도 많았다.


이제 후배들을 양성하는 체육인의 길을 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보육원( pajukits.com)을 1959 년

6월 설립  이사장 이시던 김경일, 장영신의 6 째

아들이 "김정철 " 선수다.


두분은 철저한 그리스도 인으로서 국가로부터

사회사업의 큰 공로자로서 아주 오래 전 모든

재산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법인으로 바꾸어

개인재산이 아닌 국가로 모든

것을 헌납하였다 .


사회사업의 산 역사이며 지대한 공로를 국가가

인정하여 국민훈장 을 수여 받았으며, 2 대 원장

김정현을 거쳐 3대 윤하경 원장 역시

국민훈장을 수여 받았다.


꿈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Compassion 그리스도

사랑을 펼치며 평생  "캄패션 회장"으로

수고하면서 한국 복지사업의 현대화도

추진해왔다.  


자식들에게는 단 한푼도 남기지 않았고 오로지

6.25 이후 불우한 고아들만을 생각하고

헌신과 봉사와 사랑을 펼쳐 한 길의 일생을 바쳤디.


자식들은 부모님으로부터 평생 불우한 사람들을 

위하는 훌륭한 정신적 유산과 봉사의 정신을

배우며  실천하며 김정철 선수도  자랐다.

 


http://blog.daum.net//yongbokj23


yongbok  jun  (   운             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