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9. 02:34ㆍ스포츠와 문화예술
축구만큼 재미있는 스포츠는 없다!
"축구"는 전 국민이 가장 아끼고 열광하며 사랑하는 종목의 스포츠가 아닌가?
아시아 최고의 명 수비수로서
현 프로 연맹 부회장인 김정남씨와 ( 스위 퍼) 명 콤비를 이루었던 부동의 중앙 수비수
(스토퍼) "김호" 선수는
수비뿐 아니라 지능적 플레이로 공격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4년 국가 대표 감독으로 미국 월드컵에 참전 했고 울산 현대, 수원 삼성,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수 많은 우승을 일구어 내며 ,한국의 축구 발전에 선수로 지도자로서 많은 공을 세운바 있다.
한국 상업은행 축구단에서 필자( 전 용복) 가 "주무"로 근무 할 당시 3 년을 함께 팀에서 보냈는데,
김호 선수는 당시
대인관계에 언제나 상대방에게 밝은 미소로 푸근함을 안겨 주었고 후배들에게는 지극히 자상하며
만사를 보살펴주고 도와주려고 애 쓰는 인생의 선배로서도, 뒷 바라지 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일상 생활에서도 모든 역량을 다하면서도 남 앞에 대 선수로서 보기 드물게 아주
겸손 하던 모습은 지금도 늘 기억에 남아있다.
축구 선수 중 유일 무일하게 고대 "철학과"의 선수로 활약한 후, 해병대를 거쳐 상업은행 팀의
주장을 맡았던 거포 "한 웅수" 선수를 친 형처럼 좋아 하였으며 ,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웃 할 수 있도록 늘 발 벗고 나서 팀의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평시 도량이 넓고 강직하며 자신의 뜻은 굳히지 않고
관철 시키는 추진력이 있었는데 한 세대에 보기드문 큰 그릇의 축구 선수로
축구 감독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사에 가장 훌륭한 축구 지도자로서
온 국민들에게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사진/ 금융단 축구대회에서 우승 후 행장의 축하 인사를 받는 한국상업은행 축구단의 이순명 코취
좌로부터 이경규 축구단 부장 가운데 중앙이 필자 전용복 ( 운 석) 이 가장 행복한 모습이다!
사진/우승을 하고 나면 은행에서 대접이 완전 달라진다, 각 지점을 돌며 우승에 대한 인사를 나누는 모습
좌측 축구부 주장 한웅수선수 , 필자 전용복 (운 석 ), 김 동근 감독 ( 작고) 지점장 , 이순명 코취
금융단 축구 우승컵을 앞에 놓고 기념 촬영
우승이 얼마나 힘든 작품인지 운동을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는 증명사진이다.!
이민 와서 참 오랜 만에 꺼낸 빛 바랜 사진이지만 , 필자에게는 너무 감회가 깊은 팀 우승 사진이다.
앞 줄 이순명코치 한국상업은 행 축구단 단장, 행장, 부장
뒷줄 한웅수 주장, 전 용복 ( 운 석 ), 박정출, 박대성,문홍, 주영준, 김호 선수 .
사진/우승 후의 모처럼 회식 장면 박대성 , 이순명 코치, 전용복 ( 운 석 ) 이수훤 (GK)
사진/ 상업은행 합숙소와 운동장이 있는 경기도 도농리에서 ( 야구장과 축구장 합숙소와 운 동장이 있다)
동계 합숙 훈련 중 찍은 사진
앞 줄 전 용복 ( 운 석) 박대성
강병찬 ( 상은 감독.1987년 국가 대표 팀 코치 및 2000 년 히말라야의 "부탄 축구 " 국가 대표팀 감독 /작고 )
박삼환( 국가 대표) .뒤의 유기흥( 국가 대표)선수와 감독 김동근 ( 작고)씨가 보인다.
금융단 축구 우승팀은 최초로 제 1회 한 일 친선 축구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상업은행은 일본 "미쯔비시" 축구 팀과 부산에서 시합을 하여 승리하였으나, 일본에 가서 교환 경기를
하는 문제는 결국 당시 은행의 사정으로 더 이상 이루어 질 수 없어 아쉬었다. ( 필자 운 석은 뒷 줄 왼쪽에서 세번째)
2014 년 월드컵 우승 독일 전차군단
전 세계를 품 안에 넣은 그 영광은 모든 선수에게 생애의 꿈이다.
한국 상업은행 축구 단 창단
1969.1.10 팀을 창단하여 1988. 12월 경영개선의 이유로 해체된 된 한국상업은행 축구단은
1970. 금융단 축구 팀으로서 6차 리그 중 4 번이나 우승하는 저력을 보였다.
우승 전력
금융단 축구 2 차 리그 (5/289-6/20)
5 차 리그 우승 ( 10/19-10/28)
6차 리그 우승 (11/22-12/5) 및 리그 종합우승
제 2 회 대통령배 쟁탈 금융단 축구대회 (1970 12/5-12/15
김계연 감독 김동근코치가 취임하며 선수로서는 권경진, 김상진, 김삼락 ( 바로셀로나 올림픽 대표 감독),
김호 (1994년 국가대표 감독,울산 현대, 수원 삼성 감독 ) 김호곤 ( 동래고 감독,연세대학 및 국가 대표 코치,
울산 현대 기술고문) 문홍,박삼환, 김종태, 이원우, 박정출, 김규대, 선수로 창단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유기흥, 장다석, 박삼환,
강병찬,(연세대, 87년 상은 감독, 부탄 국가대표 감독으로 2001 년 말기 암으로 사망)
박상인 ( 1981 서독 분데스 리그 MSV 뒤스부르크 , 현대 호랑이 현 부산 교통 공사축구단 감독 ) 등
국가 대표선수들이 필자가 근무 할 당시 상업은행 선수로 활약하였다.
필자가 1973년 한국상업은행 "축구단 주무" 로 임명을 받을 당시 금융단 축구계 현황
1960 년대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모든 선수들은 운동을 하고 먹고 살아 갈 길이 참으로 막막한 시절이였고
군 축구단이나 대표선수가 오직 갈 길이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바로 직면한 현실이였다.
지금처럼 좋은 급료의 직장도 없었으며 운동만 집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없는 실정에서
바로 나타난 사람이 3 대 고시를 모두 패스하여 1969 재무부 이재국장이던 "장덕진" 씨였다.
( 박정희 대통령의 처 조카사위) 남이 지니지 못하는 열정을 한국 체육계에 쏱아 부으며 금융단 팀을 하나씩
찿아 다니며 설득한 그 능력과 열정을 누가 딸아 갈 것인가?
아마 한국 체육계에 이만한 사랑과 열정과 힘을 쏱을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은 아마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하여 도와 달라 함께 가자면서" 12개의 국책 은행과 시중은행들에게
설득을 거듭하여 9 개의 국책은행을 비롯 금융단 축구 팀이 창단 되었으며 1969년 조흥은행, 신탁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이 창단 되고 주택은행, 외환은행, 산업은행, 이후 자동차 보험, 서울 은행,
국민은행, 기업은행, 한일은행(1970.2 월) , 농협(1972.4 월 ) 이 창단 되면서 군 팀과 실업리그를 겸해서
개최하게 된다.
무려 2 백명의 선수들이 은행원이 될 수 있었는데 한국의 프로 축구 팀이 생기기 전 까지 한국 축구계가
활성화 되고 지탱할 원대한 힘이 되었으며 지금의 한국 축구가 발전 할 수 있는 대단한 공이 세워진 것이다.
당시 이재국장은 은행, 보험, 증권 등 1.500 개 금융기관의 인사와 경영의 주요 결정의 책임자이자 대출 한도
대출금리를 정하고 대 기업 여신관리도 책임을 지는 자리 였는데 아무리 파워가 있다 한들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한국축구처럼 발전 할 원동력은 절대 이룰수 없었을 것이다.
첫 해 10 개월 동안 6 라운드 315 경기를 치루었으니 참 대단한 공로가 아닐 수 없다.
금융단소속 축구 팀 들의 협의체로 "금융단 축구 협의회"가 이때 생겼으며 1981 한국 실업 축구 연맹과
통합되었다.1983 슈퍼리그가 창설되었고 한 두 팀씩 금융단 팀들이 I.M.F 위기 에 남아 있던 팀들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장덕진씨는
8 대 국회의원,대한 체육회 부회장 ,농수산부 차관 (1973) 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누구나 알고 있는 "박스 컵 축구대회"를 개최하여 축구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http:// blog.daum.net/yongbok23
전 용 복 ( 운 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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